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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자유의지와 결정론"
description: "로버트 사폴스키의 『Determined』를 읽으며 자유의지와 인과관계,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의 해상도를 생각한다."
date: "2026-10-24T09:32:00.000Z"
categories: ["essay"]
source_url: "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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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지와 결정론

로버트 사폴스키의 『Determined』 를 읽었다. 자유의지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헤드라인을 보았을때 내 생각과 비슷해보여서 덜컥 집어들었다.

자유의지란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해보기전 기저를 이루고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 세계는 인과로 이루어져있다. 어떤 사건,현상이 발생했다면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원인에도 또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인과관계들을 끝없이 거슬러 올라간다면 어디로 수렴할까?

## 틱으로 나뉜

여기서 한 가지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우리가 양자역학에서 확률적으로 기술하는 현상조차, 그 기저에는 아직 알지 못하는 더 근본적인 상태와 인과관계가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관찰하는 확률은 세계 자체의 근본적인 무작위성이 아니라, 그 세계의 일부인 우리가 기저의 상태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세계를 가정하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계를 게임 속처럼 아주 작은 시간 단위인 틱으로 나누어 생각해본다.
다음 틱은 현재의 틱의 상태로 부터 전이된다. 이전 틱이 없었으면 다음 틱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 우주가 이런 이산적인 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과학적 주장은 아니다. 다만 인과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유효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그 틱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빅뱅 시점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모든 변수와 이 상태머신의 전이 규칙이 주어진다면 다음 틱도 하나로 정해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실제로 계산해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다음 상태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그다음 틱도 같은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고 미래라고 불리는 것들은 이미 연쇄적으로 다 정해져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저의 상태와 전이가 결정론적이라면, 우리가 관찰하는 세계가 아무리 확률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미래는 존재론적인 수준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도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우주의 현상이니 이 세상의 규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 인과로 이뤄져있을까?
단순한 우리 객체로만 보면 현재 우리를 이루는 것은 태어날때부터 주어진 생물학적 조건과, 성장하며 겪는 경험, 학습 과 사회화 그리고 그과정에서 변화해온 신경세포들의 연결까지 모두 이전 상태로 부터 이어져온 인과관계의 일부이다.

## 의식이라는 블랙박스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은 무엇일까?

우리는 의식이 고귀하고 특별한 무언가로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그 구체적인 기작과 동작을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법 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생물학적, 화학적 수준에서 바라보면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복잡하게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생체 신경망이다. 경험과 자극은 신경세포의 가중치와 동작 방식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다시 우리의 다음 행동,생각에 영향을 준다.
물론 단순히 인공신경망의 가중치와 동일하게 볼 순 없겠지만, 학습 결과가 물리적인 구조와 상태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의 출력을 의식적인 선택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아직까진 그 선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연산을 의식적으로 관찰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자유의지는 그 블랙박스속에 있다고 믿는 것 아닐까?

스피노자는 『에티카』 제1부 부록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은 의식하면서도 그 욕망을 결정한 원인은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여긴다고 설명한다.[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다만 불투명성은 설명의 일부일 뿐. 그 불투명성이 자유의지를 설명하진 못한다. 자유의지라는 감각에는 다른 팩터가 더 필요하다.
사고실험을 하나 해보자.

## 복제된 나

동일한 구조와 상태를 가진 오토마타(automata)가 수백 대 있다고 가정해보자.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입력을 받는다면, 이들은 모두 동일한 출력을 낼것이다. 몇번을 반복하더라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그 오토마타를 인간으로 치환해보자.
이번에는 우주 자체가 완전히 동일한 상태로 복제되어 있다고 가정해본다.
단순히 관측 가능한 환경이나 양자 상태만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기저의 존재론적 상태까지 모두 동일하다.
그 상태에서 동일한 인과적 규칙이 작동한다면, 각 우주의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행동과 생각 역시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오토마타들, 혹은 그 인간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결정하는 행위 자체를 자유의지라고 본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동일한 생각과 행동을 보인다면, 그 선택에서 '나'만의 의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자유의지는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 환경에서는 '나'를 다른 개체와 구별할 수 있는 요소가 전무하다. 그럼 거기서 '나'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런 환경에서는 자유의지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모두가 동일한 결과를 내뱉으니 고유성이 없다. 여기서 나의 의지가 곧 타인의 의지다. 그 행동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그 종류가 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고유성에 대한 인지가 수반되어야 존재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번에는 이 오토마타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오랜시간 자극에 반응하고 학습하고 변화한다고 가정해보자. 각자가 마주한 자극과 경험이 다르니 내부상태도 점차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틱을 지나온 뒤에는 동일한 입력에도 서로다른 출력을 내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차이가 비결정론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점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이게된 이유도, 그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그 결과 내부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조차 이전 틱의 인과관계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고유성 자체가 결정론적인 결과인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관찰 하는 것은 각기 다른 출력을 만들어내는 개체들이다. 그러나 그 개체들이 어떤 인과적 역사를 거쳐 지금의 상태가 되었는지까지는 알기는 어렵다.
너무나 복잡하고, 서로다른 결과들이 나타나기에 우리는 그것을 각자 독립적인 선택으로 받아 들이는 것아닐까?

개체들의 출력은 관찰자들에게 확률적으로 다양한 분포처럼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각각의 출력이 아무런 원인없이 선택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고유성이 자유의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유한 결과가 나타난다 해서 반드시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인식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느끼는 현상의 일부가, 이렇게 결정론적으로 만들어진 고유성과 그차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고유성은 어떤 개체가 혼자 가지고 있는 성질이 아니라, 다른 개체와의 차이, 델타다. 복제본이 완전히 같으면 델타는 0이고, 역사가 갈라질수록 델타는 커진다.
현실에는 완전히 동일한 역사를 가진 두 사람이 없으니 델타가 0인 경우는 없다. 복제 실험은 델타가 0으로 수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극한 사례일 뿐이다.

'나'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헤겔(G. W. F. Hegel)의 인정(Anerkennung) 논의도 떠오른다. 헤겔은 자기의식을 다른 자기의식에게 인정받는 관계 속에서 설명한다.[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내가 여기서 말하는 개체 간 차이와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나'를 고립된 개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연결해볼 수 있겠다.

자유의 조건은 결정론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결정론의 산물이다.

## 자유라는 말

그렇다면 애초에 여기서의 자유라는 것은 무엇일까?
완벽한 무작위성일까? 하지만 무작위로 발생한 결과가 어째서 자유로운 선택이 되는 것일까?
원인으로부터 독립적인 선택을 자유라고 정의한다면,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건 세계의 규칙으로 설명할 수없는 마법과도 같은게 되기때문이다!)
반면 자신의 판단과 의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자유라고 정의한다면, 그 의도 역시 인과적 결과라는 사실과 반드시 모순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어려워진다.
모든것은 사실 결정되어있고 우리는 그길을 걷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자유롭다고 판단할 수있을까?

물론 세계의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과 우리가 그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 자신도 그 거대한 상태머신의 일부이기에 세계의 모든 기저 상태를 외부에서 관찰하는 메타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제한적이며, 그 안에서 미래는 여전히 확률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확률이 반드시 세계의 근본적인 비결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걸까?
자유의지를 정의하는 것 조차 쉽지 않은데, 우리는 왜 그것이 자신의 일부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자신의 고유성을 보장받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자신이 다른 개체와 구분되는 존재이기를 바라고, 그 고유성을 후세에 전달하고 싶은 생물학적 욕구가 기저에 있는 것일까

혹은 억압에 대한 반발이 자유에 대한 욕망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공통의 규범과 행동 양식을 학습하지만, 각자의 인과적 역사는 서로다르다. 그렇게 형성된 고유한 욕구와 사회의 요구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유라는 개념을 더 강하게 의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본능적으로 고수하는 데에는 인간 두뇌의 연산적 한계도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어떤 행동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틱의 인과관계를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는것은 생물학적으로 너무나 비용이 큰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모든 인과 사슬을 온전히 계산하는 대신, 적당한 지점까지만 끊어 생각한다거나 그동안 학습된 본인 뇌속의 모델로 추론될 뿐이다

인간이라는 집단이 사회화를 통해 공통으로 학습한 베이스 레이어 위에서, 각자의 고유한 경험이 더해진 모델을 바탕으로 세계를 확률적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마치 트랜스포머 모델이 세상의 모든 물리법칙을 시뮬레이션 하는 대신, 지금까지 주어진 문맥만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 하듯이 말이다.

우리의 뇌는 패턴화를 좋아한다. 내 안의 복잡한 신경망이 어떻게 다음 출력을 만들어 내는지 전부 관찰할 수 없으니 그 모호한 블랙박스에 ‘자유의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타인의 모든 역사를 알 수 없으니 눈앞의 행동에 ‘선과 악’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복잡한 인과관계를 일종의 손실압축(Lossy Compression)을 통해 처리하는 셈이다.

물론 이 역시 추측일 뿐이다. 이런 심리와 인지 기작의 기원은 진화생물학이나 신경과학, 뇌과학의 영역일 것이라 쉽게 단정 짓기는 어렵다. 어쩌면 나중에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구체적인 로직을 지금보다 훨씬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이 어떤 기작에서 발생하는지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 결정론적 해상도

결정론적 세계에서 자유의지란 존재 할 수 없다고 내가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별로 도움되는 주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를 단정하기보다, 우리가 왜 그러한 개념을 만들었고 갈망하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하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결정론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고민하고 판단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정론적이다라는 의미는 해석 가능하다는 의미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언가에 끌려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의 생각이란 레이어는 이미 그 위에 있는 레이어이기 때문에 인과과정의 파생이면서도 동시에 참여하고 있는 개체이다. 내가 지금 하는 생각도 물론 과거에 의해 결정된거지만 이 play 를 하고 있는 나라는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건 그걸 넘어선 메타적으로 바라볼 수 없기에 참여자로서 끊임없는 인과를 만들어낸다.
각기 다른 레이어에서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복잡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결정론적 세계에 살아간다는것이 우리의 미래의 인과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나의 자유의지에 대한 기저의 욕망은 유효한걸까? 어떤 의미를 가져야할까?

나는 그래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결정론적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사고의 감옥](https://yongseok.me/blog/congitive_prison/)이라는 글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변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가 샘플링한 물리엔진으로 세계를 해석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위에서도 말한 것 처럼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변수와 계산할 수 있는 연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그 한계를 지금 쓰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전 짤막한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해석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해석력을 높이는 것은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인과에 대해서 좀더 디테일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해석 가능한 것을 늘리고 나에게 주어진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더 선명하게 인식하고 계산하는것이 이 결정론적 세상에서 해야하는 것들이 아닐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만큼, 내가 어떤 해상도의 세계를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과거의 틱을 얼마나 더 이해할 수 있는가. 압축되어 생략되었던 변수가 무엇이며, 어떤 인과적 기작들이 현재의 상태를 만들어 냈는가.
원인을 모른 채 끌려가면 예속이고, 원인을 적합하게 이해하면 같은 필연 속에서도 자유다. 자유가 정도의 문제라는 것, 그 정도를 올리는 것이 원인에 대한 이해라는 것. 나는 그것을 해상도라고 부른다.

## 끝으로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조금 허무한 느낌도 있다.
결정론적인 세계에서 모든 것이 인과적 결과라는 주장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메시지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내 고유한 생각을 드러내고, 조금은 잘난 척하고 싶어서 이런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욕망조차 지금까지의 경험과 학습에 의해 형성된 결과일 테고.
어찌 보면 우스운 이야기다. 이 글의 논리대로라면 그 욕망이야말로 고유성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고, 그 고유성은 결정론이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꼭 무언가의 결론에 도달해야만 이런 고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고,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는 언제나 제한적이다. 그러니 지금의 판단이 온전한 답이라고 확신하기보다, 더 많은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타인의 행동일 수도 있고, 사회의 어떤 현상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인과관계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과관계를 이해하면 이전에 내렸던 판단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해상도를 높인다고 해서 모든 문제의 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넓은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판단을 수정하는 과정 역시 세계의 다음 틱을 구성하는 일일 것이다.

결국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완결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세계의 해상도를 끊임없이 높여가는 과정인 것 같다.
우리는 이미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끝없는 이야기와 훈련이 필요할 뿐이다.

## 덧붙임으로 넘어가며

이 글은 처음부터 세계가 존재론적으로 결정론적이라고 가정하고 출발했다. 현대 물리학이 그 가정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양자역학은 측정 결과를 확률로 기술하고, 그 예측은 실험적으로 매우 정확하다. 다만 확률로 기술된다는 것과 세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라는 것이 같은 말인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 아래 덧붙임은 그 질문을 붙들고 결정론을 포기하지 않았던 해석들, 즉 드브로이–봄, 어후프트의 세포 자동자, 팔머의 불변집합이론이 벨의 정리 앞에서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지켰는지 정리한 것이다. 본문의 틱과 상태머신이 그중 어디에 가까운지도 거기서 다시 본다.

## 덧붙임: 오토마타 우주와 결정론적 양자 해석들

보통 주류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파동함수의 붕괴에 따른 개별 측정 결과를 근본적으로 확률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이러한 '원인 없는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물리학자들은 양자 현상 이면에도 결정론적 인과가 작동할 수 있다는 대안적인 해석들을 내놓았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바 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결정론만이 아니라 국소성(Locality)이라는 원칙이었다. 멀리 떨어진 두 물리적 시스템이 있을 때, 한쪽에서 일어난 일이 빛보다 빠르게 다른 쪽의 물리적 실재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과 함께 이른바 [EPR 논문](https://doi.org/10.1103/PhysRev.47.777)[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제기한 문제는 오늘날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고 부르는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원래 논문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다뤘지만, 이해하기 쉽게 스핀을 이용해 생각해 볼 수 있다.

[ConceptNote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서로 얽힌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두 입자의 전체 스핀이 0인 상태라면, 같은 방향을 기준으로 스핀을 측정했을 때 한쪽에서 위쪽이 나오면 다른 쪽에서는 아래쪽이 나온다.
각각의 측정 결과는 확률적이지만, 한쪽의 결과를 알게 되면 다른 쪽의 결과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입자가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면, 한쪽에서의 측정이 다른 쪽의 물리적 상태를 즉각적으로 바꾼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쪽 입자는 관측되기 전부터 이미 그 결과를 결정하는 어떤 물리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EPR 논증의 출발점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파동함수가 자연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아니라, 아직 파악하지 못한 물리적 정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국소적 숨은 변수(Local Hidden Variables)의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입자들이 처음부터 결과를 결정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멀리 떨어진 뒤에는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양자 얽힘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1964년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John Stewart Bell)은 [벨의 정리](https://doi.org/10.1103/PhysicsPhysiqueFizika.1.195)[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를 통해, 국소적 인과성과 측정 설정의 통계적 독립성 등의 조건을 만족하는 이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상관관계에는 수학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였다.

[ConceptNote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단순히 같은 방향에서 서로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입자들이 미리 결과를 결정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입자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측정했을 때 나타나는 상관관계다. 측정 방향을 여러 조합으로 바꿔가며 얻은 결과들을 비교해 보면, 국소적 숨은 변수로 설명할 수 있는 상관관계에는 한계가 생긴다.
대표적인 CHSH 부등식에서 그러한 국소적 모형의 상한은 2지만, 양자역학은 특정 조건에서 약 2.83까지 예측한다.

[ConceptNote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그리고 실제 실험에서는 벨의 부등식을 위반하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관찰되었다. 2015년에는 주요 실험적 허점들을 차단한 [벨 실험](https://doi.org/10.1038/nature15759)[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까지 수행되었고, 이 연구 계열은 [2022년 노벨 물리학상](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2022/press-release/)[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으로 이어졌다.

결국 아인슈타인이 기대했던 방식, 즉 입자들이 미리 가진 국소적인 정보만으로 양자 현상의 모든 상관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실험 결과와 양립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결정론 자체가 반증된 것은 아니다.
벨의 논증에는 여러 전제가 함께 들어간다. 그중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포기하느냐에 따라 여전히 서로 다른 물리적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벨의 부등식 위반이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국소적 인과성과 상대성이론에서의 신호 전달 가능성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 결정론을 유지하려는 해석들

대표적인 예가 [드브로이–봄 이론(De Broglie–Bohm Theory)](https://plato.stanford.edu/entries/qm-bohm/)[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이다.
1927년 루이 드브로이가 제안하고 1952년 데이비드 봄이 발전시킨 이 이론에서는 입자가 관측되기 전에도 실제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파동함수가 그 움직임을 결정론적으로 안내한다.

일반적인 양자역학에서는 파동함수를 통해 각 위치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을 계산한다. 반면 드브로이–봄 이론에서는 파동함수 외에도 입자의 실제 위치라는 변수가 존재한다.

파동함수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따라 변화하고, 입자의 위치는 별도의 유도 방정식(Guiding Equation)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파동함수와 모든 입자의 초기 위치가 주어진다면 이후의 운동 역시 결정된다.

[ConceptNote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이중 슬릿 실험에서도 입자는 두 슬릿 중 하나를 실제로 통과하지만, 파동함수가 입자의 경로를 안내하기 때문에 여러 입자의 도착 위치를 모아보면 간섭무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관찰하는 확률은 이러한 입자들의 정확한 초기 위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다만 이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국소성을 유지하지 않는다.

앞서 EPR 논증에서는 멀리 떨어진 입자들이 서로 즉각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각자 가지고 있던 물리적 속성에 따라 측정 결과가 결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브로이–봄 이론에서는 얽힌 입자들이 하나의 공동 파동함수로 기술된다. 이 파동함수는 각각의 입자를 독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입자의 위치를 함께 변수로 가지는 함수다.

그렇기에 한 입자의 운동이 멀리 떨어진 다른 입자의 실제 위치에도 의존할 수 있다. 또한 한쪽 측정 장치의 설정이 다른 쪽 입자의 운동을 결정하는 과정에 비국소적으로 관여할 수도 있다.
즉, 입자들의 결과가 결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결정 과정이 각 입자의 주변 환경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국소적 의존성을 이용해 빛보다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국 드브로이–봄 이론은 결정론을 유지하는 대신 국소적 인과성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는 접근이다.

이와는 조금 다른 접근도 있다.

199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헤라르뒤스 어후프트(Gerard 't Hooft)는 [세포 자동자 양자 해석(Cellular Automaton Interpretation)](https://arxiv.org/abs/1405.1548)[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을 제시했다.
이 접근에서는 우리가 양자역학으로 설명하는 세계의 기저에 훨씬 더 근본적인 결정론적 상태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탐구한다.

어후프트는 결정론적인 시스템도 양자역학의 수학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여러 개의 구별 가능한 상태가 있고, 그 상태들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다음 상태로 전이되는 오토마타를 생각해 보자.
각 상태를 힐베르트 공간의 기저 벡터로 표현하면, 상태 전이는 기저 벡터들의 순서를 바꾸는 순열 연산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순열 연산자 역시 유니터리 연산자의 일종이므로, 슈뢰딩거 방정식에서 사용하는 수학적 형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ConceptNote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즉, 실제 시스템은 매 순간 하나의 결정된 상태를 가지며 전이하고 있지만, 그것을 기술하기 위해 양자역학의 수학적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다.

어후프트는 이러한 기저의 실제 상태를 존재론적 상태(Ontological State)라고 부르고, 우리가 양자역학에서 사용하는 중첩 상태들은 이를 기술하기 위한 템플릿(Template State)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파동함수는 반드시 세계의 근본적인 실재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저의 결정론적인 상태들을 다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학적 표현일 수도 있는 것일까?

특히 이산적인 상태들이 규칙에 따라 전이되는 세포 자동자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가 본문에서 상상했던 틱과 상태머신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결정론적 오토마타를 양자역학의 수학적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 우주가 그러한 오토마타라는 주장은 다르다.

어후프트 역시 모든 오토마타가 실제 양자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입자와 상호작용, 상대론적 대칭성 등을 재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실제 우주가 플랑크 시간마다 업데이트되는 거대한 오토마타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결정론적인 시스템을 양자역학의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는 접근 자체가 흥미로웠다. 본문에서 이야기한 손실압축과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모델과 세계의 기저 상태를 구분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 초결정론과 불변집합이론

또 하나의 접근이 초결정론(Superdeterminism)이다.

벨의 부등식을 유도할 때는 실험자가 선택하는 측정 방향과 입자의 숨은 변수 사이에 통계적 독립성이 있다는 측정 독립성(Measurement Independence) 가정을 사용한다. 초결정론은 이 가정에 의문을 던진다. 측정 대상인 입자뿐만 아니라 실험 장치와 관찰자의 선택 역시 동일한 우주의 인과적 역사 속에 속하는데, 두 변수가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물론 공통의 과거를 가진다는 사실만으로 통계적 독립성이 자동으로 깨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양자 현상을 설명하려면 왜 그런 상관관계가 만들어지는지 구체적인 기작을 제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초결정론은 필요한 상관관계가 지나치게 인위적인 '미세조정(Fine-tuning)'이라거나 검증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으며 주류 물리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사빈 호센펠더와 팀 팔머는 2020년 [논문](https://arxiv.org/abs/1912.06462)[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을 통해 이러한 비판이 초결정론 전체를 배제하는 이유는 아니며 구체적인 모형으로 검증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대표적인 모형이 바로 팔머가 발전시켜 온 불변집합이론(Invariant Set Theory)이다.

팔머는 2009년 발표한 [The Invariant Set Postulate](https://arxiv.org/abs/0812.1148)[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에서 기존의 동역학처럼 방정식의 변화를 묻기 전에, 애초에 우주의 상태 공간(State Space)에서 어떤 상태들이 물리적으로 가능한가를 기하학적으로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혼돈이론(Chaos Theory)을 보면, 결정론적인 규칙을 따르는 비선형 시스템의 상태들은 시간이 흐르며 특정한 영역으로 모여들어 그 안에서만 궤적을 그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 끌개(Attractor)라고 부르며, 그중에는 확대해도 자기유사적인 구조가 반복되는 프랙탈 형태의 '기묘한 끌개(Strange Attractor)'가 존재한다.

[ConceptNote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팔머는 우주 전체의 상태 공간 역시 모든 변수 조합이 임의로 실현될 수 있는 연속적인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시스템이 그 내부에만 머무르는 프랙탈 구조의 불변집합(Invariant Set) 위에 놓여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프랙탈 구조의 특징은 선분의 가운데를 끝없이 덜어내어 만드는 칸토어 집합(Cantor Set)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무한히 많은 점들이 남아 있지만, 동시에 곳곳에 수많은 빈틈(집합 바깥의 영역)이 존재한다.

[ConceptNote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따라서 상태 공간에서 서로 아주 가까워 보이는 두 상태라 하더라도 하나는 불변집합 위에 있고 다른 하나는 빈틈에 놓일 수 있다. 겉보기에는 변수 하나가 미세하게 달라졌을 뿐인데, 하나는 물리적으로 허용되는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에서 실현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기하학적 제약은 벨의 부등식이 전제하는 반사실적 가정(Counterfactual)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흔히 "입자의 숨은 상태는 그대로 둔 채, 그때 내가 측정 장치의 각도만 다르게 설정했다면 어땠을까?"를 당연하게 상상한다. 그러나 불변집합이론에서는 실제로 일어난 상태에서 측정 설정 변수만 임의로 바꾼 조합은 프랙탈의 빈틈(불변집합 바깥)에 떨어지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상상할 수 있어도 물리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뒤따른다. 측정 각도를 아주 조금 바꿨을 뿐인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초결정론이 비판받던 작위적인 '미세조정(Fine-tuning)'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팔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연구](https://arxiv.org/abs/1507.02117)[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에서 프랙탈 구조 위에서의 거리를 재정의하는 p진 거리(p-adic Metric)를 도입했다. 두 수의 차이를 특정 소수의 거듭제곱으로 나누어지는 정도로 정의하는 p진 거리에서는, 일반적인 유클리드 거리로 볼 때 아주 가까워 보이는 두 상태라도 한쪽이 불변집합 바깥에 있다면 실제로는 매우 멀리 떨어진 상태가 된다. 즉, 기저 상태 공간의 고유한 거리 기준에서 보면 이는 미세조정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상태를 배제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2020년 연구](https://doi.org/10.1098/rspa.2019.0350)[Citation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에서는 이 추상적인 기하학적 모델을 실제 양자역학의 스핀 상태를 나타내는 블로흐 구면(Bloch Sphere)에 직접 적용했다. 구면 위의 각도를 유한한 비트열로 이산화하고 이를 프랙탈 불변집합의 궤적과 연결함으로써, 국소성과 결정론을 유지한 채 벨의 부등식 위반을 수학적으로 도출하는 구체적인 모형으로 발전시켰다.

[ConceptNote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불변집합이론은 시간의 이산화보다 우주 상태 공간의 기하학적 제약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내가 본문에서 상상한 틱 기반 상태머신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다만 우주의 상태 전이가 임의의 가능성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저의 규칙에 의해 허용된 궤적 위에서만 결정론적으로 발생한다는 관점은 상당히 맞닿아 있다.

물론 팔머가 가정하는 프랙탈 구조가 실제 우주에 존재하는지, 그리고 유한한 상태 표현에서 나타나는 제약 등을 통해 기존 양자역학과 구별되는 실험적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열린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자유의지의 근거처럼 여겨지던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상태 공간의 기하학적 제약으로 풀어내는 사고 패턴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 다시 결정론적 해상도로

이 이론들을 찾아보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세계가 결정론적인가라는 질문과 우리가 그 세계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전자는 세계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이고, 후자는 우리가 그 세계를 어느 정도까지 관찰하고 예측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인식론적 질문이다.

결정론적인 기저가 존재하더라도, 관찰자가 그 기저의 모든 상태를 알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어떤 현상을 확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확률이 반드시 세계의 궁극적인 성질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확률이 단순히 우리가 모르는 변수를 압축한 결과라는 설명이 입증된 것도 아니다. 적어도 현재의 양자역학과 실험은 그런 결론을 확정해 주지 않는다.

### references

[References (interactive original)](https://yongseok.me/blog/%EC%9E%90%EC%9C%A0%EC%9D%98%EC%A7%80%EC%99%80-%EA%B2%B0%EC%A0%95%EB%A1%A0/)
